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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셰어런팅, 아이의 추억일까?, 사생활 침해일까

by dan-24 2025.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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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양육 고민

디지털 환경은 부모에게 '기록'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는 아이의 첫울음, 첫걸음마, 첫 유치원 등원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기고, 그것을 지인들과 공유하며 기쁨을 나눕니다. 그런데 이 따뜻한 행위가 과연 언제까지 순수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의 중심에 있는 개념이 바로 셰어런팅(Sharenting)입니다. ‘Sharing’과 ‘Parenting’의 합성어로, 부모가 자녀의 사진, 영상, 이야기 등을 SNS나 온라인 플랫폼에 지속적으로 게시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셰어런팅,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을까?

2023년 해외 조사에 따르면, 미국 부모의 75% 이상, 영국 부모의 56%, **이탈리아 부모의 약 75%**가 정기적으로 자녀 관련 콘텐츠를 온라인에 게시한다고 응답했습니다. 특히 자녀가 5세가 되기 전까지 부모는 평균 1,500장의 사진을 게시하며, 그중 일부는 출생 후 1시간 이내에 첫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명확한 통계가 부족하지만, SNS에 올라오는 ‘육아일기’ 콘텐츠의 규모만 보아도 셰어런팅은 이미 일상화된 문화입니다.

요즘은 조부모 세대 역시 스마트폰과 SNS에 익숙해지면서, 사랑스러운 손주, 손녀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공유하는 흐름에 자연스럽게 합류하고 있습니다.

셰어런팅의 그늘 – 법과 기술이 경고하는 이유

1. 아동 프라이버시 침해

아이의 얼굴, 이름, 생년월일, 생활 반경, 학교 등 민감 정보가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거나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이로 인해 자녀가 커서 "왜 내 허락 없이 이런 걸 올렸냐"라고 항의하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2. 디지털 납치와 이미지 도용

해외에서는 아이 사진이 SNS에서 무단 저장되어, 타인의 계정에 ‘가짜 자녀’로 등장하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습니다. AI 합성 기술이 발달하면서 아동 얼굴이 디지털 성범죄나 광고에 악용될 위험도 커지고 있습니다.

3. 조부모 셰어런팅의 사각지대

특히 SNS에 익숙하지 않은 조부모의 경우, 사진을 전체공개로 올리거나, 위치정보가 포함된 상태로 게시물을 업로드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이런 실수는 의도치 않게 아이의 사생활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으며, 부모와 조부모 간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3. 법적 쟁점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이미 부모의 셰어런팅이 자녀의 초상권·사생활권을 침해한 것으로 간주되며, 일부는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아동복지법,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따라 일정 기준 이상 노출될 경우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디지털 정체성', 누가 설계하고 있을까?

셰어런팅의 핵심은 단순히 사진 한 장을 올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스스로를 온라인에서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지 결정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이미 수백 장의 사진과 정보가 세상에 흩뿌려지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말해, 디지털 정체성(Digital Identity)을 부모가 선점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프라이버시의 문제이자, 자율성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아동 권리의 문제입니다.

셰어런팅, 금지가 아닌 '지혜로운 절제'로

셰어런팅을 금기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고 나누는 것은 부모와 조부모의 기쁨이자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다만, 다음의 원칙을 기억한다면 세대 전체가 함께 지키는 셰어런팅 문화가 가능합니다.

✔ 안전한 셰어런팅을 위한 5가지 기준

  1. 실명, 얼굴, 위치 등 민감정보는 반드시 가림 처리
  2. 전체공개보다는 비공개, 가족공개로 설정하기
  3. 게시 전, 의논하는 습관 들이기
  4. 아이가 크면 반드시 동의를 받고 게시
  5. 귀엽지만 민감할 수 있는 사진(벌거벗은 모습, 울고 있는 장면 등)은 과감히 게시하지 않기

사진은 저장되거나 복제될 수 있다는 점을 늘 인식 비공개 계정 또는 가족 전용 공유 앱 활용 아이의 존엄을 해치는 사진은 절대 게시 금지 (벌거벗은 채 목욕하는 모습, 우는 얼굴, 화장실에서의 장면 등)

부모로서 가져야 할 새로운 감수성

디지털 세대의 부모는 기록하는 역할을 넘어, 아이의 온라인 권리를 지켜주는 첫 번째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부모가 주도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아이가 자신의 SNS 계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설계하게 될 것입니다. 

맺으며

셰어런팅은 분명, 사랑의 표현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디지털의 바다에서 부메랑처럼 아이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은 소중하지만, 사생활은 보호받을 권리입니다. ‘내 아이의 권리를 내가 먼저 존중한다’는 자세가, 디지털 시대 부모의 새로운 품격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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